3일의 프랑스 파리
개선문
개선문 벽에 새겨진 글과 그림
샹젤리제 거리
신개선문
처음부터 싫었던 건 아니다.
로맨틱한 재즈 음악과 함께 담배 연기조차 낭만으로 만들어버리는 예술가들의 도시 파리, 프랑스 파리야말로 유럽의 대표 관광지이자 많은 이들의 로망과 같은 도시가 아니던가!
나는 딱히 파리에 꼭 보고 싶은 건 없었지만, 첫 유럽여행이기 때문에 두말할 것 없이 파리는 무조건 거쳐야 한다는 약간의 강박관념에 시달렸다. 2018년 당시 분위기가 그랬는지, 아니면 20대 초반이라는 내 나이가 그렇게 만들었는지 모르겠다. 여행을 떠나기 전 열심히 공부했던 여행 가이드북에서도 “파리는 마땅히 가야 할 도시”라며 열분을 토했다.
파리에 도착하자마자 가장 먼저 보러 간 것은 신개선문이었다. 가이드북에서 본 것보다 훨씬 거대했다. 그날이 평일이었는지, 길을 지나가는 로컬들은 모두 굉장히 바빠 보였다. 목이 꺾이도록 신개선문을 쳐다보면서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나는 마치 광화문 세종대왕 앞에서 사진을 찍는 외국인마냥 이질적이었다. 다음으로 보러 간 개선문 주위에는 역시 관광객들이 많이 보였다. 그런데 이상했다. 파리에서 가장 유명한 건축물 중 하나인데도 큰 감흥이 없었다. 광화문보다 연남동을 좋아하는 나의 취향에 웅장한 개선문과 샹젤리제는, 이상형은 아니지만 잘생긴 남자 정도였나 보다.
첫 혼자 해외여행이자 첫 유럽 여행의 두 번째 나라, 프랑스 파리에서도 런던처럼 한인민박에서 머물렀다. 7년 전 나는 혼자 도착한 남의 나라도 도미토리형 숙소도 상당히 낯설어서 한인민박을 꽤나 선택했던 것 같다. 지금도 여전히 돈을 아끼기 위해 도미토리 숙소를 고수하지만, 한인민박은 상대적으로 일반 호스텔보다 비싸면서 경험의 기회를 줄이기 때문에 더 이상 이용하지 않게 되었다. 점점 우연히 만나는 다양한 국적의 인연들이 주는 재미를 알게 되었고, 도미토리 숙소는 가성비 숙박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오르세 미술관
모나리자를 찍느라 바쁜 사람들
루브르 박물관 카페
루브르 박물관 카페에서 첫 인종차별을 당했다. 인종차별은 처음에 당하면 의외로 화가 나는 것보다 당황스러움이 크다. 20년을 살면서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감정이기 때문에, 뇌가 상황을 인지하는데 시간이 걸렸던 것 같다. 물론 어린 시절 캐나다와 호주에 살 때도 언젠가 인종차별을 경험한 적이 있었겠지만, 너무 어렸을 때라 기억에서 지웠을 터이다. 당황스러움 뒤에 뜨거운 분노가 찾아왔지만, 카페 직원에게 전달하진 못했다. 그때는 인종차별 대처법도 모르거니와 타인에게 컴플레인을 하는 것 자체가 낯설었다. 결국 똥이 무서워서 피하나 더러워서 피하지,라는 정신 승리를 하며 카페를 떠났지만, 루브르 박물관 속 작품을 감상하면서도 잔잔히 그 순간이 떠올랐다. 내가 작고 어린 동양인 여자라는 사실이 최초로 머릿속에 선명히 박히는 것 같았다.
<승리의 여신 니케상>, <밀로의 비너스상>, <모나리자> 등 세기의 작품들이 유튜브 숏츠처럼 나를 지나갔다. 예술에 조예가 깊지 않은 나는 가이드북이 설명해 줬던 작품의 디테일들을 찾으며 감상하려 노력했는데, 자꾸만 흉내만 내는 느낌이 들었다.
생 샤펠 2층
파리에서는 보통 지하철을 타고 이동을 하게 되는데, 20개국을 여행하면서 마주친 지하철들 중에 가장 더러웠다고 해도 무방했다. 청결도는 뉴욕 지하철과 양대산맥인데, 거기서 오줌 냄새를 더하면 파리 지하철이 된다. 타본 지하철이라고는 서울과 대구 지하철정도밖에 안 되는 그 시절 나에게 파리 지하철은 너무나 지독하고 강렬한 인상으로 남았다. 더군다나 카메라 스트랩도 가위로 잘라서 훔쳐간다며 소매치기로 악명 높은 도시인지라 지하철을 탈 때 특히나 긴장했던 것 같다.
유럽을 여행하면 자연스럽게 성당 두어 군데를 들리게 되어있다. 한국에서는 성당 근처도 안 가본 내가 유럽에서는 거의 들리는 도시마다 성당을 찾고 있었다. 신이 있다면 의아해할까. 파리 생 샤펠 성당도 아름다운 스테인글라스가 인상적이었지만, 유럽에서 본 성당 중 가장 예뻤다고 말할 수는 없겠다.
가이드북이 설명해 준 대로 여행을 하다 보니 내가 교과서 안에 들어와 있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내 인생도 정석대로 살지 않았는데 여행을 정석대로 하고 있으니, 알레르기 반응이 올 수밖에.
알렉상드르 3세 다리
파리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은 알렉상드르 3세 다리였다. 한강보다 작은 센강을 가로지르는 알렉상드르 3세 다리는 이날 완벽한 날씨와 함께 매우 한적하고 아름다웠다.
특히 당시 파리에 살던 대학 동기와 함께 다리 근처를 산책해서 그런지 더더욱 즐겁고 낭만적인 시간으로 기억된다. 역시 여행은 그 장소뿐만 아니라 그날의 날씨, 동행, 컨디션 등 많은 것들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
